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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비극적인 전투들 TOP7 본문

세계사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비극적인 전투들 TOP7

겜리뷰 2018. 6. 1. 12:29

세계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전투를 뽑으려고 합니다.
근데 문제는 흠 ... 아무리 주관적으로 다양하게 뽑으려고 해봐도 시기는 거의 비슷하네요.
참고로 전쟁이 아니라 전투입니다.

TOP7
르제프 공방전

 

 

 

독일이 소련 사이에서 벌어진 최고의 방어전.
발터 모델이 이끄는 9군이 200만의 소련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전투이다.

소련군은 모스크바를 막아내고 여세를 몰아 울퉁불퉁한 르제프 돌출부를 공략하려고 했다.
그러나 발터 모델의 '공세적 방어전략'에 의해 독일 포병의 집중포화와 예비대의 신속한 증원에 오히려 역으로 포위되어 각개격파당했다.

또한 전선의 재배치의 필요성을 느낀 독일군은 비밀리에 군사들과 반소련 성향의 러시아인들을 3주의 작전 끝에 성공적으로 퇴각시켰다.
이것이 들소 작전으로 현재까지도 독일 군사 교리의 모델로 뽑힌다.

소련군은 이 3주 동안 독일군의 움직임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이 전투에서
소련군의 사상자는 130만 명. 독일군의 사상자는 60만 명으로 추산된다.


TOP6
장진호 전투

 

 

미군 역사상 가장 고전했던 전투라고 기록되었다.
미국 1해병사단이 10배 많은 12만의 중공군을 상대로 지연작전을 펼쳐 흥남 철수 작전까지 이끌어내었다. 이것이 한국전쟁에서 일어난 세계 3대 동계작전 중 하나이다.
미군은 절반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하였음에도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오히려 10배가 넘는 사상자를 입히는 데에 성공했다.

이후 벌어진 흥남 철수 작전에서는
193척의 군함으로 10만의 민간인, 10만의 군인 도합
20만의 사람들을 태우고 철수하는 것에 성공했다.


TOP5
오키나와 전투

 

 

일본군 8만 6천 중 7만 7천이 전사, 민간인은 14만 명이 죽었으며
4만 명이 강제로 전쟁에 동원되다 죽은 자들이라고 한다.
미군도 1만 4천 명 정도가 전사했다.

심지어 이 전투에서는 일본이 가미카제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대함선 야마토까지 자폭에 썼다고 하니 군사적 판단이 결여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다만 이전까지 일본군의 군사 교리를 바꾸어 최대한 지속적으로 피해를 주는 지연전을 펼침으로써
작은 섬, 그리고 정글이라는 특수한 지형 요건 때문에 미군이 큰 피해를 입었다고 봐도 된다.


TOP4
레닌그라드 포위전

 

 

독소 전쟁에서 발발한 매우 긴 기간에 걸친 포위전.
독일군이 레닌그라드를 포위하고 식량 저장소가 공습으로 불타자 도시의 보급은 완전히 끊겼다.
때문에 시민들은 저마다 약탈을 하였고 군의 사기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거기다 무차별 포격은 계속 이어지면서 시설은 계속 파괴되고 이를 복구할 자원은 남아있지 않아 도시는 황폐화되고 있었다.

거기에 한파까지 겹치면서 많은 소련인들이 죽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 한파로 인해 라도가 호수가 얼면서 이동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고 이 때문에 볼호프까지의 이른바 '생명의 길'이 만들어졌다. 독일군의 지속적인 공격과 얼음의 붕괴로 많은 차량이 파괴되었음에도 꿋꿋하게 소련군은 버텨나갔고 이는 동부전선에서 쿠르스크 전투의 패배로 전선을 뒤로 물려야 했던 독일군의 상황이 나타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독일군은 55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 반면 소련군은 군인과 민간인을 다 합쳐 350만의 사상자를 내었다.



TOP3
모스크바 전투

 

 

모스크바 점령을 두고 벌어진 독소 전쟁의 일부.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350만의 소련군을 괴멸시킨
독일군은 소련군이 와해되었다고 보고 모스크바로 진격 중이었다.
또한 여전히 소련군이 격렬하게 저항하고는 있다지만 수도를 점령한다면 의지가 꺾일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때마침 찾아온 러시아의 겨울로 인해 가뜩이나 보급에 어려움을 겪던 독일군은 버틸 여력을 잃게 된다. 이때 독일군은 거의 처음으로 패배를 겪는다.
 
독일군은 60여만 명의 사상자, 소련군은 120만의 사상자를 내었다.


TOP2
쿠르스크 전투

 

 

 

세계대전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공부했다면 누구나 알만한 가장 유명한 대규모 전차전이다.
소련군은 전차들로 하여금 기동성을 활용한 근접전을 펼쳤고 이는 아무리 성능이 좋은 티거를 소유한 독일군이라도 숫자상으로 불리한 상황에 근접전을 한다면 지는 상황이었다.

독일과 소련 공군이 미친 듯이 양측에 폭격을 퍼부었고 육군에서도 이동 불능이 된 전차들 일부는 해치를 걸어 잠그며 저항하거나 혹은 나와서 유탄까지 던지면서 끝까지 피해를 주려고 했다.
이렇게 양측 모두 피해를 입었음에도 병력 지원이 턱없이 부족했던 독일군이 결국 물러나면서 소련군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독일군은 20만, 소련군은 25만의 인적 피해를 안았던 전투이다.



TOP1
스탈린그라드 전투

 

 

 

처음에는 코카서스 유전을 점령하기 전 거쳐가는 도시로 여겨졌던
스탈린그라드에서 펼쳐진 인류 역사상 최악의 지옥.

사상자가 독일군과 동맹군(루마니아, 헝가리, 이탈리아) 150만, 소련군은 300만에 달했다.
처음에 독일군은 돈 강에서 소련군을 몰아내고 무난히 소련군의 항복을 받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소련군의 뒤에는 볼가 강이, 앞에는 독일군이 있었다. 퇴로는 막혀있었고
거기에 스탈린이라는 이름이 걸린 도시, 그것도 코카서스 유전 지대로 가는 통로 중 하나였기 때문에
소련 지휘부가 항복을 선택할 리가 만무했다.
거기에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소련이 진다면 후방에서 일본이 뒤를 친다고 독일과 조약을 맺은 상태였다. 때문에 스탈린그라드는 필사적으로 방어해야 했다.

호수와 강이 많은 특성 탓에 전차를 우회하여 섬멸하는 방식을 쓸 수 없었던 독일군은 단순히 보병과 전차들을 도시에 투입하여 시가전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청색 작전이다.

독일 공군 루프트바페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도시를 요새화한
소련군이 유리한 위치에 놓이는 원인이 되었다. 
백병전을 포함하여 무수히 많은 소모전이 일어났다.
스탈린그라드 도시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대혈투였다.
그러나 산전수전을 다 겪은 독일 정예군을 당해낼 수는 없었고 선전에도 불구하고 스탈린그라드는 이내 점령당할 위기에 놓였다.

한편, 소련군 총사령관이었던 바실렙스키는 이런 난전 속에서 측면을 방어하고 있는 루마니아군을 격퇴할 계획을 세웠다. 상대적으로 약한 독일의 동맹국인 루마니아를 격퇴하고 돈 강을 건너 쉽게 독일군을 포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 이것이 천왕성 작전이다.

루마니아군은 평소와 다른 소련군의 움직임에 급히 지원을 요청했으나 전방에만 신경을 쓰던 독일 육군 사령부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소련군은 로켓포와 각종 야포로 루마니아군을 두들기기 시작했고 이내 측면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불과 나흘 후 소련군은 독일군 33만을 포위했고 보급로가 붕괴된 독일군은 탈출을 계획했다.

그러나 히틀러는 괴링의 말을 듣고 공중을 통해 보급을 받아 현지를 사수할 것을 명령했다.
새로 돈 집단군을 급조한 만슈타인은 6군을 탈출시킬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우유부단한 파울루스는 히틀러의 압박에 못 이겨 현지 사수를 고집했다.

그 와중에 소련군은 점점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고 독일군은 결국 항복한다.

매우 처절한 시가전이었으며 레닌그라드 포위전과
비슷한 양상으로 소련군이 고립될 뻔하다가 독일군이 역으로 고립된 전투였다.
실제로 레닌그라드 때처럼 독일군이 도시를 포위하고 우회하면 되는 일이었다.

어차피 A집단군이 코카서스 일대를 장악한다면 석유 공급이 차단되므로
기갑전력이 마비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히틀러는 스탈린그라드의 완전 점령을 원하고 있었기에 결국 인류 사상 가장 치열하고 지옥 같은 전투가 벌어졌다.

결국 스탈린그라드의 이름 그 하나에 걸린 두 독재자의 자존심 싸움으로 인해 수백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인류 역사상 가장 치열한 싸움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 밖에도 아우스터리츠 전투, 워털루 전투, 게티즈버그 전투, 콘스탄티노플 전투, 과달카날 전투, 팔레즈 포위전 등등이 많지만 규모가 큰 전투가 있었지만 다 적기엔 시간도 부족하고 가독성도 떨어질 거 같아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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