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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나치 독일, 소련이 유럽 주도권을 잡을 수 있던 이유 본문

세계사

20세기에 나치 독일, 소련이 유럽 주도권을 잡을 수 있던 이유

겜리뷰 2018. 6. 1. 12:09

1차 세계대전의 시작은 보스니아 지방의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부부가 암살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유명한 사라에보 사건입니다. 이 암살을 실행한 범인은 세르비아의 한 청년인 가브릴로 프린치프로 블랙 핸드라는 비밀결사 소속이었습니다.

 

 

위는 가브리엘 프린치프 사진.

 

오스트리아는 이 배후에 이 조직은 세르비아 왕실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고 확신하고 바로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날립니다. 그리고 수도 베오그라드를 향해 진격하죠. 러시아는 발칸 반도에 영향을 뻗치고 동시에 같은 슬라브 민족 국가의 후견인을 자처했기에 이에 동조했고 결국 1차 세계대전이라는 최악의 스토리가 시작됩니다.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이 세계대전으로 번진 이유는 유럽 정세에 잘 나타납니다. 당시 유럽의 세력은 3국 협상(영국, 프랑스, 러시아) 3국 동맹(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독일의 경우 나폴레옹 3세가 이끄는 프랑스군을 격퇴하고 남은 프랑스 국민군까지 박살 내고 알자스, 로렌 지방까지 차지한 상황이었습니다. 때문에 프랑스가 독일에 복수하지 못하도록 반프랑스 노선을 걷고 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이탈리아와 조약을 맺고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려는 비스마르크의 계략이었던 것이죠.

영국은 유럽의 어느 한 국가가 독보적으로 강해지는 것을 막고 세력 균형을 유지시킨다는 오랜 외교 방침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것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과 같은 사례로 보아도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영국은 러시아와 프랑스를 끌여들어 3국 연합을 체결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독일군은 3국 연합이었던 국가들의 지리적 특성상 서부전선(영-프 연합군), 동부전선(러시아군)으로 나뉘어 양면 전투를 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러시아는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 레닌이 정권을 잡아 독일의 동부전선이 끝납니다.

그러나 독일 해군의 U 보트가 미국 중립 상선을 침몰시킴에 따라 미국의 참전으로 결국 압도적인 공세에 물자가 바닥나게 됩니다.

게다가 3국 동맹 국가였던 이탈리아는 중립국으로 있었으면서 추축국의 상황을 보고 연합국의 편으로 참전합니다. 전쟁 수행 능력을 잃어버린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결국 항복하였고 1차 세계대전은 연합군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이 와중에 독일에서는 11월 혁명이 일어나 공화국이 성립했고 오스트리아도 패전의 책임을 물어 헝가리와 다른 식민지들이 모두 독립하여 소국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최악의 결과로 나타났다.''


러시아 혁명으로 들어선 레닌은 경제, 사회, 외교적인 면에서 일치한 여러 국가들을 묶어 소비에트 연방을 세웠습니다. 비록 적백내전을 거치긴 했어도 풍부한 인구와 단결력을 바탕으로 서서히 입지를 넓히기 시작했습니다.

 

 

 

위는 소련 국기 사진.

 

거기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면서 독립한 동유럽 국가들은 레닌을 위시한 소비에트 연방(소련)에게 그대로 노출되었습니다.

레닌의 뒤를 이어 스탈린이 당 내부 다툼에서 최종 승리하여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르고 급격한 공업화가 시작되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전을 보면 러시아는 여전히 농업국의 직위였습니다. 혁명 전 로마노프 왕조만 하더라도 농노제를 이용한 봉건 제도를 지향하고 있었으니까요.

거기다 1차 세계대전 이후로 왕정이 급속도로 몰락하고 점차 혁명주의가 대두되게 되고 스페인, 독일, 폴란드, 이탈리아 등지로 공산당이 생겨납니다.

이로 인해 소련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정확히 말하면 나치의 체코슬로바키아 합병에서 폴란드 침공 사이) 미국의 가장 경계해야할 적으로 급부상합니다.



반면 패전국인 독일의 경우에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막대한 전쟁 배상금과 영토를 지불해야 했으며 배상금을 제대로 납부하지 못하자 벨기에군과 프랑스군이 당시 독일의 최대 공업 단지인 루르 지방을 무단으로 점령했습니다. 거기다 대공황까지 터지면서 독일은 유례없는 초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이 발생하였습니다.

비록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의 집권당이었던 사민당이 미국의 원조를 받아 일부 배상을 면제받고 나름 구조 정책도 세웠으나 경제 혼란은 쉽게 수습할 수가 없었죠.

 

위는 바이마르 공화국 국장 사진.

 

 

상황이 이렇게 되자 중산층이 몰락하며 극단주의 성향의 정당들이 득세하게 됩니다.

그게 바로 대표적으로 공산당 과 나치당입니다.

나치당은 원래는 히틀러가 창당했던 것이 아닙니다. 히틀러가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정당을 조사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는데 우연히 자신의 사상과 맞아떨어져 가입하고 뛰어난 능력으로 기존 당수까지 밀어낸 케이스입니다.

사람들은 독재정권, 경제발전, 군비의 재확장, 강대한 독일을 건설하려는 나치스를 열렬히 지지했습니다. 게다가 군국주의와 반유대주의 사상은 기존 사회에서 공공연히 퍼지고 있던 배후중상설과도 매우 잘맞아떨어졌죠.    

사민당을 공격했던 건 나치뿐만이 아닌 같은 좌파계열이었던 공산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중도좌파였던 사민당 또한 청산해야할 부르주아의 잔재라고 본 것입니다.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사회주의식 파시즘의 일종이라며 코민테른의 지시에 따라 바이마르 공화국의 근간을 흔들었습니다.

더군다나 때마침 의원 선거를 앞두고 베를린에서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이 터지면서 나치당은 선거에서 사민당과 공산당을 꺾고 압승하게 되며 이 기세를 몰아 수권법을 통과시키기에 이릅니다.

수권법이란 국회를 배제하고 행정부가 법률을 정립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하는 법입니다.

수권법이 통과되며 바이마르 헌법은 유명무실해졌으며 이후 사민당, 공산당, 국가인민당, 중앙당 등은 강제로 해산되게 되며 나치의 시대가 도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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