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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주장하는 고구려에 대한 동북공정 주요 내용과 반박 본문

한국사

중국이 주장하는 고구려에 대한 동북공정 주요 내용과 반박

겜리뷰 2018. 6. 1. 12:16

안녕하세요. 이번엔 중국의 동북공정에 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동북공정이란 중국의 현재 국경 안에서 있었던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기 위해서 진행한 연구 프로젝트입니다. 현재 국경 안이라면 우리나라랑 관련된 곳은 옛 고구려랑 발해가 연관되어 있지요. 중국은 고구려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면 동북공정에서 중국이 주장하고 있는 내용은 무엇일까요?

중국이 주장하는 것을 요약하면 '고구려는 중국 소수민족의 지방 정권이었다'입니다. 급조된 주장이라 논리적으로 말도 안되는 이야기죠. 중국의 기록서인 한서나 사기에서도 고구려를 외국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러면 동북공정에서 중국이 주장하고 있는 내용과 그에 대한 반박을 써보겠습니다.

1. 주몽의 성은 한족의 후예인 고이족으로 고구려 민족은 중국 동북의 소수 민족이다.

반박: 기원전 10세기에 있던 고이족과 구분되게 북부여 계통의 예맥족으로 그것도 중국의 삼국지에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2. 고구려의 왕들이 한 이래로 중원 왕조의 책봉을 받는 대신 중국 황제에게 공물을 바치며 중국의 지방 정권을 자처했다.

반박: 조공과 책봉은 중국의 국가가 강성할 때 행한 형식적인 외교적 형식일 뿐이고 영토 편입을 위한 실질적인 침공은 없었습니다. 이것을 중국의 국가의 한낱 신하로 보는 것은 있을 수가 없지요. 공물을 바친다고 지방정권이면 베트남이나 왜나라(현재 일본), 거기에 백제, 신라까지 모두 속국이라고 주장하는 격입니다.

거기다 나폴레옹 시대에 무력으로 눌려 군사와 식량을 대준 옛 독일 국가들 프로이센, 작센, 바이에른, 오스트리아 또한 프랑스의 지방정권이 되는 터무니없는 상황이 됩니다.  

3. 중국 학자들은 과거 중국 내 존재했던 나라의 역사도 중국사라고 주장, 평양이 한나라의 군현인 낙랑에 존재했음으로 평양 천도 이후의 고구려사를 중국사라고 주장한다.

반박: 현재의 영토를 기준으로 과거의 역사도 자신의 것이 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말이 안됩니다. 그렇게 따지면 과거 일본이 동남아시아와 중국의 만주와 한반도를 병합했을 때 자신들의 역사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그 논리면 원나라가 송, 금나라의 영토를 차지했었으니 중국의 역사는 몽골의 것이겠네요.

 비슷한 사례를 하나 들면 군국주의 시절 독일이 있습니다. 나치당 집권 당시에 히틀러는 과거 프로이센 이후 1차 세계 대전 종전 당시 점령하고 있던 영토에 대해서 미련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독일계 거주민의 수와 많다는 이유와 함께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를 병합하게 됩니다. 지금 중국은 그토록 혐오하는 파시즘의 대표주자인 나치와 비슷한 주장을 펼치는 것입니다. 

또한 애초에 기술된 낙랑과 평양이 중국이 주장하는 위치로 지명을 나타낸 건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낙랑이라는 지명 자체가 한의 군현인지 혹은 이후에 세워진 국가 명인지조차 명확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평양은 지명으로 보면 수도지만 사전적 의미는 평평한 땅이고요.

무엇보다 낙랑은 미천왕 때 멸망하였는데 평양으로 수도를 천도한 것은 그 이후인 장수왕 때의 일입니다. 따라서 백번 양보를 하기도 어렵지만 만약 중국 주장대로 하더라도 영토 내의 역사로 보기가 힘들기에 전제 자체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4. 고구려와 수, 당과의 전쟁은 중국 내전이며 고구려와 벌인 전쟁은 국제전이 아닌 통일전쟁이다.

반박: 중국이 주장하는 대로 수와 당나라를 중앙 정부로 놓고 고구려를 지방 정권이라고 해봅시다. 그런데 수나라와 당나라가 건국된 시기는 고구려가 건국된 후입니다. 중앙정부보다 지방정권이 먼저 세워지는 국가가 존재할 수 있는가? 물론 아니죠. 그렇다면 고구려는 애초에 지방정권이 아니라 수와 당의 중앙정부가 됩니다.

또한 당의 경우 문왕 때부터 고구려와 국가간 외교관계로 볼 수 있는 사절 파견이 초반에 엄연히 있었습니다. 사절이 오갔다는 것만으로도 국가로서의 지위를 중국 스스로가 보증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5. 고구려 멸망 후 고구려 유민 중 다수가 왕족이나 귀족들인데 중국으로 다수가 이주하여 한족과 중화되으니 고구려의 역사는 중국사에 포함된다.

반박: 가장 큰 오류는 기존 고구려 사회는 소수의 지배층뿐만 아니라 다수의 피지배층인 농민과 노비 계층도 많이 있었다는 겁니다. 130만의 고구려인들 중 중국으로 넘어간 것은 소수이며 대다수의 고구려인들은 남아 도호부에 저항하였고 고구려인들을 지배층으로 말갈족들을 피지배층으로 건국된 것이 바로 발해입니다. 



6. 고구려와 고려의 건국시기에 차이가 있음을 근거로 두 나라가 무관하다고 주장하며 고구려가 한국사인 고려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는 고려가 고구려가 멸망하여 혈통이 끊기고 계승성이 없는 국가로 본다는 것인데 자승자박입니다.
중국은 여러 민족이 번갈아서 왕위를 차지했고 대표적인 것이 명-청 교체기를 떠올리실 수 있죠. 한족과 다른 북방 민족이 번갈아 차지한 건데 이것 또한 인정되어 중국사는 반토막이 되어야합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도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국가를 세웠다는 것이 나와있습니다. 이를 들어 고구려와 고려는 역사적으로 계승하였다는 것이 명백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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